구기동 자택은 작가 사사건건이 직접 만든 가구들로 채워져 있다. 이번 전시 ≪가구에게 일어난 일≫은 바로 그 내밀한 집에서 시작된다. 작가의 일상 속에서 사용되고, 이동하며, 곁을 지킨 원본 가구들과 이를 전시장이라는 공적 공간의 언어로 재구성해 새롭게 탄생시킨 사물들을 나란히 호출한다...
구기동 자택은 작가 사사건건이 직접 만든 가구들로 채워져 있다. 이번 전시 ≪가구에게 일어난 일≫은 바로 그 내밀한 집에서 시작된다. 작가의 일상 속에서 사용되고, 이동하며, 곁을 지킨 원본 가구들과 이를 전시장이라는 공적 공간의 언어로 재구성해 새롭게 탄생시킨 사물들을 나란히 호출한다.
한국어에서 ‘가구(家具)’는 흔히 공간에 종속된 사물로 인식되지만, 프랑스어 ‘meuble’, 이탈리아어 ‘mobile’, 독일어 ‘möbel’ 등 서양 언어에서 가구는 ‘움직일 수 있는 것’을 뜻하는 라틴어 ‘모빌리스(mobilis)’에 기원을 둔다. 사사건건의 작업은 바로 이 유동적인 ‘이동성’에서 출발한다. 그는 해체와 재조립이 용이한 구조를 설계했고, 세 번의 이사를 거치며 가구들과 함께 삶의 궤적을 옮겨왔다. “6년마다 이사를 겪으며 내게 집이란 존재는 오래된 추억 대신 어설픈 향수로 남겨졌다.” 작가에게 집은 고정된 건축이 아니라 계약 관계에 따라 주기적으로 바뀌는 거처에 가깝다. 하지만 이 끊임없는 이주 속에서 그에게 집이란 안정감을 준 건 건축이 아닌 사물이었다. 그는 어린 시절 부모님의 안방을 지킨 촌스런 몰딩 장식의 커다란 장롱을 기억한다. “그 장롱만 있으면 어떤 낯선 공간이라도 부모님이 계시는 안방이 되어버리는 것이 신기했다. 내게 장롱이 있는 곳을 떠올리는 일은 지난 집들의 모습을 떠올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됐다.” 이런 기억은 공간 전체를 하나의 가구처럼 다루는 방식으로 확장된다. 그는 벽과 바닥조차 해체해 옮길 수 있도록 설계해 가구와 공간의 경계를 허문다. 영문 제목 ‘Trans-Furniture’는 공간을 횡단하며 경계를 없애는 사사건건 가구의 전환적인 특징을 상징한다.
사사건건의 가구는 구조적 이동성에 머물지 않고 인간의 숨결을 새기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사사건건이 여행 중 인상 깊었던 장면들, 가령 이탈리아 중세 건축의 아치와 다 빈치의 천장화 속 별들은 가구의 표면으로 내려앉아 형태가 되고, 요철이 되고, 장식이 된다. 효율성을 중시하는 산업재의 매끈함을 거부하고, 굳이 흠집을 내어 물감을 채우거나 삐뚤빼뚤한 철사를 엮는 이 수공예적 노동은 단순한 치장이 아니다. 그것은 차가운 기성품에 온기를 불어넣어 사물을 삶의 동반자로 격상시키고, 사물과 인간 사이의 교류 방식을 재정립하려는 작가의 치열한 개입이다. 그가 사물 표면에 남기는 흔적은 마음, 눈, 손의 상호작용이다. 굳이 해명하지 않아도 되는, 아니 언어로 번역할 수 없는 감정과 기억이 스며든 가구는 더 이상 단순한 ‘짐’이 아니다.
가장 주목할 점은 지극히 개인적인 일기장 같은 이 가구들이 공적인 전시장에 놓일 때 발생하는 작가의 태도 변화다. 작가는 누군가에게는 무의미할 수 있는 자신의 내밀한 취향과 사적인 흔적들을 타인도 기꺼이 수용할 수 있도록, 이를 면과 면을 잇는 ‘경첩’이나 뼈대를 지탱하는 보철 같은 보편적이고 기능적인 쓸모로 치밀하게 번역해냈다. 닫힌 방 안의 사적인 궤적이 공공의 무대에서 익명의 타자와 교감하는 공식적인 사물로 치환되는 것이다.
“사물을 집을 규정하는 존재로 보는 것은 끝없이 이주해야만 하는 삶에서 유용한 마음가짐이 분명하다.” 사사건건의 글처럼 끝없이 이주해야만 하는 사람과 함께 가구도 이주한다. 가구는 사람과 함께 터전을 다진다. 그리고 사람과 함께 살아간다. 생소하고 서먹한 장소에 어느새 소근거리는 친밀함과 키득거리는 유대감을 퍼뜨리고, 외딴 곳에 덩그러니 홀로 떨어지더라도 그곳을 다시 '집'으로 되돌리는 힘을, 사사건건의 가구는 가지고 있다.
이제 이 가구들이 또 한 번의 이동을 시작한다. 작가의 익숙한 둥지를 떠나 전시장이라는 공적인 무대에 놓인 이주하는 사물들. 그들이 지나온 경로에 귀를 기울이다 보면, 집이라는 존재가 벽돌과 시멘트가 아닌, 우리 곁을 지키는 낡은 책상과 장롱 속에 깃들어 있음을 새삼 깨닫게 될 것이다.
작가 소개
사사건건
사사건건은 건축 설계는 물론 공간과 가구를 디자인하는 건축사 사무소다. 가구를 고착화된 형태가 아닌 사용자의 필요에 따라 나뉘고 합쳐지는 ‘유연한 도구’로 정의하며 기능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자유 분방한 디자인을 추구한다. 사사건건은 인테리어 디자인 스튜디오와 건축사사무소에서 실무를 거쳐 2025년 독립한 전중섭 소장이 이끌고 있으며 서울처럼 빠르게 변하는 환경에 적합한 공간 경험을 제안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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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사사건건(전중섭) 기획 임나리 그래픽 디자인 김유나 작품 사진 맹민화 번역 김민지 주최 워키토키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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